세 돌을 맞은 거창청소년문학상 올해 수상자로 단편소설 ‘신세계’를 쓴 허준(거창대성일고 1년)군이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우수상은 ‘그리움’의 이재위(샛별중 3년)·수필 ‘진정한 보물’의 유수영(중앙고 3년) 학생이 각각 차지했다.

 

미래의 한국문학 주인공을 뽑는 이번 문학상은 1차 공모 작품심사를 통해 20명을 선발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작품의 표절과 짜깁기 등을 가려내기 위해 2차 백일장을 실시해 두 번에 걸친 엄정한 평가를 거쳤다.

 

시, 소설, 수필 등 장르에 관계없이 수준작을 선정했으며, 사상계로 등단한 거창 문단계의 원로 신중신 시인이 심사위원장을 맡아 최종 심사를 진행했다.

 

신중신 시인은 심사평을 통해 “입상작 세 편의 두드러진 점이 거창청소년문학상이 얻은 수확”이라고 평하고 그중 대상을 받은 허준 학생에 대해 “<신세계>는 여느 해양소설 작가의 필치에 못지않게 소재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전개를 독창성 있게 펼쳐보여 주고 있다. 본격적인 문학수업의 길로 들어서길 바랄 따름”이라고 평했다.

 

행사를 주최한 거창군문학도시추진위원회(위원장 신승열)는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하는 청소년들의 수와 작품 수준이 향상되고 있다”며, “인문학을 기반으로 교육도시 거창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한편 대상 및 우수상 수상자 3명에 대해서는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해외문화기행의 특전이 주어지는데 여름방학 4박 5일 동안 백두산과 고구려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이밖에 입선작품 학생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득엽(대성고), 김민정(거창고), 김여진(중앙고), 김용준(대성고), 이나은(중앙고), 이영민(가조중), 이유진(혜성여중), 이홍남(샛별중), 임영록(샛별중), 오세원(샛별중), 유혜선(샛별중), 송현아(거창고), 장진원(중앙고), 전주연(거창여고), 정성빈(중앙고), 주예리(거창여고), 허정아(중앙고)

 

 

<심사평>

‘거창청소년문학상’이 얻은 수확(신중신)

세 돌을 맞는 ‘거창청소년문학상’ 작품 공모의 뚜렷한 특징은 입상작 세 편의 두드러진 점을 들 수 있겠다.

 

적어도 이 작품들은 주최 측에서 요구하는 평가기준, 즉 ⑴주제의 창의성 ⑵어휘선택의 적절성 ⑶문장의 완결성 ⑷구성의 적합성 ⑸표현의 독창성에서 두루 괄목할 만한 장점을 보여준 때문이다.

 

대상으로 뽑은 <신세계>는 여느 해양소설 작가의 필치에 못지않게 소재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전개를 독창성 있게 펼쳐보여 주고 있다.

 

만일, 백일장에서 써낸 글이 없었더라면 창작의 진실 여부를 두고 고심할 뻔했다. 대양에서 폭풍을 만난 선상의 묘사도 좋으려니와 신세계와의 조우라는 아이디어는 매우 빛난다.

 

허준 학생에게 ‘천재를 찾아가는 모험가’란 찬사를 보내고 싶다. 본격적인 문학수업의 길로 들어서길 바랄 따름이다.

 

우수상의 이재위도 중학생이란 걸 감안하면 시 <그리움>(외2편)이 놀랄 정도로 시적 기교가 뛰어나다. 이 또한 백일장의 시작품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조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달빛 아래 수줍은/ 달맞이꽃 한 송이’나 ‘달빛이 하도 고와서 내 마음도 수줍다’ 같은 시행은 기성시인의 경지를 연상케 한다. 군계일학이지 않은가?

 

산문을 써낸 유수영의 <진정한 보물>은 글쓴이의 성정이 잔잔하게 배어나오는 가작이다. ‘딸기가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았다는 서울의 한 연예인’과 ‘그때 툇마루에 앉아 미꾸라지를 잡아먹는 황새를 보았던 특별한 경험이 있는 나’와의 대비가 친근하게 다가든다. 백일장의 산문에서 보여준 원고지 사용법, 문장의 정갈한 솜씨에 박수를 보낸다.

 

많은 학생들이 긴 글을 제출해 주었다. 이 공모에 쏠린 관심의 척도와 입상하고자 하는 개개인의 열성이 십분 접해진다. 이나은 학생이 열정에 비해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한 사례는 앞서의 평가기준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하는 여지를 남긴다.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나, 비록 선발되진 못했지만 문학상에 열의를 보내준 다수 응모자의 반응이 바로 ‘거창청소년문학상’ 제정이 얻은 가시적 수확일 터이다.

 

 

 

 

 

 

 

<당선작 : 대상>

신세계(허준. 거창대성일고 1학년)

 

돛대에 서늘한 미풍이 인다. 커다란 돛이 하얗게 펄럭인다. 오늘은 종일 쾌청할 듯하다. 그래서인지 갑판 중앙에 황금으로 새겨진 시가 더욱 빛나는 것 같다.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지음.

 

그것은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다른 이의 팔에

안겨있는 젊은이들, 나무 위에 새들,

—그 죽어가는 세대들—그들의 노래에,

연어가 모이는 폭포, 고등어가 우글거리는 바다,

물고기, 몸뚱이, 또는 닭은 모든 긴 여름에

낳고, 태어나고 죽는 무엇이든지 칭송한다.

감각적인 음악 속에 잡힌 모든 이들은

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를 무시한다.

 

나이 든 사람은 영혼의 손으로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운명의 옷을 입은 모든 누더기들을 위해

더 크게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저 하찮은 것이다.

영혼의 웅대한 기념비를 연구하지 않으면

노래하는 학교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바다를 항해하여

신성한 도시 비잔티움에 왔다.

 

오, 벽 속의 황금 모자이크 안에서처럼

신의 신성한 불에 서 있는 현인들이여,

성한 불에서부터 나와서, 나선 속을 뱅뱅 돌아,

내 영혼의 노래하는 선생이 되어 주시오.

욕망으로 신음하고 죽어가는 동물에 묶인

내 마음을 태워 버려주시오.

그것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오. 그리고 나를

영원의 기교 안으로 모아 주시오.

 

일단 자연에서 벗어나, 나는 어떠한 자연적인 것으로부터의

내 육체적 모습을 취하지 않으리.

그러나 그리스의 금 세공사가

졸린 황제를 깨우기 위해

망치질한 금과 에나멜을 칠한 금으로 만든 것 같은,

혹은 비잔티움의 귀족들과 귀부인들에게

지나간 것이나 지나고 있는 것, 혹은 앞으로 올 것에 대해 노래하는

황금 가지 위에 앉은 그런 모습이 되리라.

 

 

나는 갑판에 드러누워 하늘을 본다. 오늘은 유달리 날씨가 맑아 구름 속까지 보이는 듯하다. 나는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구름 사이에 끼어있는 붉은 것을 발견한다. 태양이다. 구름에 둘러싸인 태양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눈이 시려 오랫동안 볼 수 없다. 또다시 시선을 이리저리. 한가롭게.

“엇!”

단말마같은 비명과 함께 느긋한 오전이 끝난다. 수평선 너머에서 몰려드는 칠흑빛의 구름떼가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분명 폭풍우일 것이다. 크기도 엄청나다. 나는 부리나케 일어나 종을 울렸다. 선원실에서 낮잠을 자던 동료들이 갑판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비몽사몽 잠의 여운을 떨치지 못한 채 내게 물었다.

“이봐, 무슨 일이야?”

“저길 봐!”

나는 그들을 향해 손끝으로 수평선을 가리켰다.

“헉!”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구름떼가 어느새 코앞에까지 와 있었다. 떼로 몰려든 먹구름의 위압감에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나는 어찌할 줄을 몰라 애타게 동료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당황스럽기는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들 사이에서 고요한 웅성거림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침묵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굉음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정신은 폭풍우에 압도당한 상태였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우리는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었다. 범선을 능숙하게 다루기는커녕 밧줄이 뒤엉켜 돛이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무슨 짓을 했는지 키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사방이 어둠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굵은 빗줄기가 내린다. 퉁-퉁 갑판에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가 심장의 고동처럼 들려온다. 빗줄기가 거세지고 들려오는 소리도 더욱 커진다. 범선이 두려움에 떠는 것만 같다. 나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어찌된 일인지 고요히 요동치는 그 고동소리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이내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선원들의 외침. 그들 사이로 퍼지는 비명. 삐걱거리는 뱃소리. 그리고 다시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 퉁-퉁.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이 위태로운 순간이 정적 속에서 수채화를 보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때, 시퍼런 섬광이 일더니 굉음이 내리쳤다. 내 머릿속의 정적이 깨지고 선원들의 혼란이 멈췄다. 우리는 제자리에 선 채 상황을 파악하며 냉정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배를 조종했다. 훈련 받을 때처럼 차분하고 능숙하게, 빠르고 정확하게 우리는 맡은 일을 해냈다. 비뚤어진 닻을 펴 올리고 엉킨 밧줄을 푼다. 고장이 난 키를 고치고 갑판을 정리한다.

“악!”

한 선원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갑판위의 물건들을 치우다가 그에게 달려갔다. 그의 다리는 화물들 사이에 끼어있었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우현으로 몰린 화물들 때문에 사고를 당한 듯했다. 나는 주변의 다른 선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뭘 보고 있어? 빨리 와서 도우란 말이야!”

소리를 들은 주위의 선원들이 몰려들어 짐을 치우기 시작했다.

“몸통을 잡고 당겨. 다리를 빼내야 해!”

“아니야, 다리가 단단히 끼었어. 일단 화물들부터 치워야 해. 야, 너희 둘은 바깥쪽에 있는 것들부터 치워. 가벼운 건 선창(船窓) 상부의 해치를 열어 화물실에 집어넣고 무거운 것들은 갑판 난간에 밧줄로 묶어버려. 어서 빨리 움직여!”

나이가 지긋이 든 선원이 신참 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재빠르게 화물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화물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가 내게 말하였다.

“너는 앞에 가서 다리를 붙잡아 나는 팔을 잡아당길 테니까.”

나는 앞으로 가서 다리를 잡았다. 뒤에서 그가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당겨!”

그런데 다리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다시 내게 신호를 보낸다.

“하나, 둘, 당겨!”

여전히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선창(船窓) 상부에서 짐을 옮기던 신참 둘에게 소리친다.

“안경 쓴 놈은 나랑 팔을 잡아당기고 안 쓴 녀석은 쟤랑 다리를 잡아당겨. 내가 숫자를 세면 동시에 잡아당기는 거야. 알아들었으면 빨리 와서 붙잡아!”

둘은 남은 짐들을 급하게 화물실에 밀어 넣고는 갑판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난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예사스럽지 않다.

“탁, 탁, 탁.”

줄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난간에 묶여있던 화물들이 그들을 덮쳤다.

“쿵!”

그들은 화물에 부딪혀 날아갔다. 안경을 쓴 선원은 반대쪽 난간에 부딪혔고 다른 한 명은 배 밖으로 튕겨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밖으로 튕겨나간 선원은 망망대해에 휩쓸려갔다.

“살려 줘!”

겁에 질린 그의 목소리가 폭우 속에서 메아리 쳤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줄 수 없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져간다.

“밧줄이라도 던져 줘. 죽고 싶지 않아. 제발, 제발!”

밧줄을 던져 줄 수 없다. 그는 이미 멀리 떠내려간 상태다. 나는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멀뚱히 서서 지켜봤다. 나는 폭풍우를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멍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옆에 있던 선원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를 애타게 찾았다. 그는 난간에 부딪힌 선원을 업고 의료실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가 내게 소리쳤다.

“금방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나는 그를 기다렸다. 그가 오는 동안 끼인 다리를 당겨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조금만 더 당기면 다리가 빠질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점점 창백해져만 갔다. 시간이 얼마 흐르자 그가 나타났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끼인 다리를 붙잡고는 힘껏 당겼다. 나도 그의 옆에 서서 다리를 잡아 당겼다. 그가 왔음에도 다리는 여전히 잘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나는 계속해서 다리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내 짧은 비명과 함께 겨우 다리가 빠졌다. 다리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내가 화물들을 마저 치울 동안 너는 다친 녀석을 의료실로 보내!”

나는 부상당한 선원을 의료실까지 부축했다. 문을 열고 의사에게 다친 곳을 알려주었다. 의사는 다친 선원을 수술대에 눕히고 아편이 섞인 물을 먹였다. 선원의 얼굴이 무언가에 취한 듯 점점 흐리멍덩해진다.

“날카로운 것이 다리에 박혔어요. 어서 빼내야 해요.”

의사는 수술용 칼을 잡으며 내게 말했다.

“쾅!”

선미(船尾)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배가 큰 파도에 부딪혔나 보다. 순식간에 몸이 뒤집힌다. 머리를 움켜쥐고 일어났을 때 방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서랍장이 넘어지면서 약품들이 쏟아졌고 침대에 누워있던 환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의사는 왼손에 상처를 입었으며 바닥에는 피 묻은 칼이 나뒹굴었다. 의사는 오른손으로 서랍장 들어 올리고는 밑에 깔린 약품들을 뒤졌다. 하지만 용기(容器)가 깨져 약품들은 서로 뒤섞인 상태였다.

“빌어먹을. 젠장.”

의사가 입술을 깨물며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서랍장을 여러 번 세게 찼다. 서랍장은 이내 망가졌다. 그의 안경에 묻은 선혈이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나는 괜찮으니 당신은 갑판위로 올라가서 다른 선원들의 일이나 도우세요.”

내가 다가가려 하자 의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바닥에서 하얀 천을 집어 상처를 묶었다. 그리고 환자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는 가방에서 새로운 칼을 꺼내 수술을 시작했다. 문을 닫고 나가려고 하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게 묻는다.

“당신의 이름이 뭐죠?”

이름을 묻는 이유가 뭘까. 뜬금없는 질문이 당황스럽다. 그리고 의사의 괴팍한 얼굴이 언짢다. 말해주고 싶지 않지만 예의상 답한다.

“리처드 바크.”

나는 문을 닫고 갑판으로 나간다. 아, 그런데 뭔가가 이상하다. 의료실에서 안경을 쓴 선원을 보지 못했다. 분명 의료실로 옮겨졌을 텐데......, 크게 다치지 않아 선실로 옮겨진 것일까. 잘 모르겠다.

갑판 위는 엉망이었다. 밧줄이 풀어져 돛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으며 뒤엉킨 줄이 난잡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선미(船尾)의 일부가 파손되어 깃발이 덜그렁거렸고 조타수는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선원들은 발을 바삐 움직이며 배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돛을 올리고 엉킨 줄을 푼 후에 선미(船尾)로 가 널빤지를 옮기고 망치질을 했다. 뒤를 돌아보자 조타수는 어느새 다시 일어나 키를 조종하고 있었다. 그는 사력을 다해 사지(死地)에서 벗어나려했다.

13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우리는 폭풍우가 잠잠해진 것을 느꼈다. 마음이 안심되자 긴장의 끈이 놓였다. 우리는 모두 그 자리에서 곯아떨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어깨를 움켜쥐며 갑판에서 일어났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깨어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망대(望臺)로 올라가 날씨를 살폈다. 하늘은 맑고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배의 파손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동쪽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나는 동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수평선 끝으로 작은 점이 보인다. 나는 망원경을 주워 점을 확대해 보았다. 섬이었다. 그리고 섬에는 거대한 도시와 항구가 있었다. 항구에는 독특한 모양의 선박들이 정박해있었다. 어쩌면 섬이 아니라 대륙일지도 모른다. 나는 큰 소리로 선원들을 깨웠다.

“육지다! 육지다!”

항해사가 가장 먼저 일어나더니 망대(望臺)로 올라와 망원경을 뺏더니 내가 가리킨 곳을 응시했다. 선원들은 망대 아래로 몰려와 항해사의 말을 기다렸다. 이내 항해사가 망원경을 눈에서 떼고는 입을 연다.

“육지다. 우리는 육지를 발견했다!”

그 순간 선원들은 환성을 질렀다. 그들이 기뻐하는 이유는 사지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은 물론 육지를 발견했으니 배를 수리할 몇 주 동안은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안온한 생각 때문이리라. 이런 생각을 하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들처럼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항해사는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는지 말을 잇기 시작했다.

“주목!”

항해사가 우렁차게 소리치자 선원들의 환성이 멈추었다. 선원들이 항해사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만약이지만, 아니. 내가 확신하건대 우리는 신대륙을 발견했다.”

선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항해사는 말을 잇는다.

“방금 전에 언급했다시피 우리는 신대륙을 발견했다. 나는 30년 동안 항해사로 일해 왔다. 그 오랜 기간 동안 나는 수많은 대륙과 섬, 국가와 도시들을 봐왔다. 그리고 그것들의 위치와 모습은 내 머릿속에 정확하게 담겨있다. 하지만 조금 전에 내가 이 망원경으로 본 도시는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으며 책에서 읽은 적도 없다. 제군들의 눈앞에 있는 저 도시는, 항구는, 배는 여태까지 우리가 사는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것들이다. 건물의 양식은 물론이고 배의 형태까지 우리가 알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의 지식으로는 저들의 문물을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장담하건대 우리는 분명히 신대륙을 발견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새벽을 뚫고 우리는 신세계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는 개척자다. 새로운 세상으로 도약하는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와-아!”

나와 선원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성취감에 사로잡혔다. 신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지만 다다르지 못한 곳. 우리는 그러한 세계의 개척자가 된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위대한 한 획을 긋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 본국에 알려진다면 우리는 영웅이 될 것이다. 어쩌면 한 나라를 넘어서 기존에 알려졌던 모든 세계의 영웅이 될 것이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라. 돛을 펼치고 키를 돌려라. 가자 새로운 세상으로!”

항해사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항해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그의 흘러내리는 눈물에 햇빛이 아른거린다. 선원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맡은 바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돛을 내리고 키의 방향을 바꾼다.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배에 힘을 실어준다. 곧 있으면 마주하게 될 세계는 어떤 곳일까. 새삼 두려워진다. 돛대 위에 꽂힌 깃발이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금껏 인류가 이룩해왔던 모든 위대한 것들을 능가하기 위해.

 

 

<당선작 : 우수상>

그리움(이재위. 샛별중 3학년)

 

 

망망대해 홀로 선

외로운 부표 하나

달빛 아래 수줍은

달맞이꽃 한 송이

 

내 임은 어디에

역마살이 끼었는가

 

 

 

 

 

(이재위)

 

 

무심한 발길질에

고개 숙인 너

밤 하늘 별만큼

헤아릴 수 없는 상처

 

 

지친 몸 스러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달빛이 하도 고와서(이재위)

 

 

 

마루 밑 여치울음 앞마당 거니는 밤

앙칼진 그 소리에 얼굴 내민 보름달

달빛이 하도 고와서 내 마음도 수줍다

 

 

 

 

 

진정한 보물(유수영. 거창중앙고등학교 3학년)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고, 또 지금도 살고 있는 곳은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다. 읍내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5번. 그 마저도 눈이 많이 오면 다니지 않는, 집 근처에‘이웃’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말 그대로 논과 산 그리고 강으로 둘러싸인 곳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집 앞에 있던 초등학교가 폐교되어 우리 집과는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는, 전교생이 100명을 겨우 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읍내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나는 시골에 위치한 우리 집이 참 싫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50분씩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하는 것도 싫었고, 하교할 때에도 어쩌다 버스를 놓치게 되면 부모님이 데리러 오실 때까지 혼자 서서 기다리는 것도 너무 싫었다.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이러한 이유로 부모님께 짜증도 많이 냈었다. 나는 다음에 커서 이런 시골에서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도 많이 했고, 얼른 커서 도시에 살고 싶다는 생각도 수도 없이 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 자취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정말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고작 읍내로 나온 것뿐이지만 밤에도 어둡지 않다는 점이 좋았고, 언제든지 편의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또한 시골에 살면서 배달음식을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했던 나에게, 배달 온 따끈따끈한 치킨은 말 그대로‘신세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이토록 편리한 생활들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지금껏 나는 이처럼 시골생활에 대해 불평불만만 늘어놓았지, 내가 얻은 것들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생각해 보려고 노력조차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한 연예인이 “딸기가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그 연예인을 보면서, ‘어떻게 그런 걸 모를 수 있나’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하지만 곧, 어쩌면 나는 내가 얻은 열 가지의 이익들을 깨닫지 못한 채 생활이 조금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투정부리고 화냈던 것은 아니었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서 ‘유일한’ 꼬마였던 나는 한창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 나이에 마을회관에 가서 주름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게 하는 재롱둥이였다.

 

그렇게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배려와 예절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강아지들은 물론이고 닭과 오리, 소들과 한 지붕 아래 생활하며 나는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달걀에서 샛노란 병아리가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보고 앞으로는 절대로 달걀을 먹지 않겠다며 울며 다짐하기도 했고, 난생 처음으로 송아지가 태어나는 것을 보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도 느낄 수 있었다.

 

시골에서 보낸 나의 사계절 또한 도시 아이들과 무척 달랐다. 봄에는 엄마 손을 잡고 산으로 들로 각종 나물을 캐러 다녔고, 여름에는 집 앞 작은 개천에서 다슬기를 잡으며 놀았으며 가을에는 각종 열매와 곡식들을 내 손으로 직접 수확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또 겨울에는 빙판 위에서 아빠가 만들어주신 썰매를 타고 놀다 얼음이 깨져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나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사계절이 주는 자연의 선물을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요즘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사는 부모님들이 자녀를 농촌에 있는 학교로 보내는 ‘농촌유학’이 대세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나 생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시골생활과 자취생활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해 본 나로서는 오히려 지나치게 도시에서 의존적인 생활을 한 아이들이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말해주고 싶다.

 

또한 전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난다. “창의성은 동물원의 황새가 슬픈 눈으로 사육사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툇마루에 앉아 생생하게 목격한, 황새가 미꾸라지를 잡아먹는 모습에서 꿈틀거린다.” 사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이 말은 그렇게 와 닿지 못 했었다.

 

어릴 때는 도시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접하며 편리한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참 부러웠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도시 아이들이 체험해 볼 수 없는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물론 시골에서 생활하며 불편한 점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순수하던 그 때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깨닫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나는 이미 다 경험해 본 셈이니까.

 

그리고 그 때 툇마루에 앉아 미꾸라지를 잡아먹는 황새를 보았던 특별한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지금도 가끔 시골집에 가면 집 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논들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구수한 거름냄새가 내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또, 어릴 때는 시끄럽다고 투정부리고 짜증만 냈던 귀뚜라미 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지금은 마치 자장가처럼 편안하기만 하다.

 

내가 훗날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지금 있는 이곳을 떠나게 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될 때가 오더라도,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내 고향,내 마음의 안식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행복하다.

 

어린 시절 “나는 이런 시골에 살지 않을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 될 테야”라고 철없이 말했다면, 지금은 이런 시골에 살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진정한 보물은 어린 시절 내가 부러워했던 도시의 편리함이 아니라,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시골의 불편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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