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거창국제연극제가 수 천 명의 관객들과 함께 풍성하게 막을 내렸다. 당일 폐막공연인 페르소나의 ‘비밥’은 티켓부스 오픈 전부터 관객들의 줄이 이어져 좌석뿐만 아니라 입석 또한 조기 매진사태를 빚었다.
올해 연극제에는 11개국 46개 단체에서 200회의 공연들이 이어졌다.
또 학술행사, 페스타, 체험부스 등이 마련돼 18만7,000여 명이 국제연극제가 열리는 수승대를 찾아 성공적으로 축제를 마쳤다.
17일간 진행된 축제는 매년 야외무대라는 낭만과 함께 여름휴가철 최고의 문화상품으로 각종 언론매체와 관객들에게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25회째를 기념해 특별히 제작된 드림인터내셔널의 사운드 이미지극 ‘100인의 햄릿’의 놀라운 무대는 한국연극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작품은 세계 초연작으로 수승대 계곡 내 수상무대를 제작, 흰 의상을 착용한 100명의 햄릿 사이의 매혹적인 붉은 의상 1명의 오필리어가 화룡점정을 이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또, 계곡이라는 자연배경을 최대한 활용해 물과 불, 사운드와 조명의 완벽한 조화로 개막작으로 손색이 없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또, 신예 단체에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국내경연참가(OFF)에 선정된 15개의 팀의 실험적이고 정성어린 작품들은 관객과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 중 영예의 대상은 극단 떼아뜨르 고도의 ‘하이옌’이 차지했다.
극단 꿈의 동지의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소’가 금상과 희곡상, 남자연기대상을 받았다.
은상은 싹씨어터의 ‘해피! 오 해피!’가, 여자연기대상으로는 극단 뉴컴퍼니의 ‘미용명가’가 차지했다.
예년과 다름없이 올해도 축제의 첫날부터 대한민국 대표 뉴스인 KBS 9시 뉴스 생중계를 비롯해 방송 및 라디오로 전국으로 연극제의 개최가 알려졌다.
게다가 실시간 FM라디오 생방송을 이용해 유·무료 공연 실황과 일정, 매진 상황과 날씨 등을 알려 다양한 방법으로 축제와 관객의 거리를 좁혔다.
페스티벌 인 페스티벌로 거창 읍·면민들의 축제참여 활성화와 주인의식 고취를 위해 개최된 ‘마이타운 페스타’ 또한 본 축제 못지않은 열기를 보였다.
총 다섯 개 팀이 매일 하루 한 팀씩 장미극장에서 경연을 펼쳤고, 거창문화원의 ‘굳세어라, 금순아’가 대상 및 연출상, 여자연기대상을 차지했다.
금상과 남자연기대상은 주상면 임실마을 팀이, 은상은 위천면이, 동상은 남상면과 웅양면이 각각 차지했다.
특히, 올해 초부터 7월 10일까지 모집한 ‘세계초연희곡공모’는 심사위원단의 공정한 심사를 거쳐 양수근의 ‘오월의 석류’가 당선됐다.
작년에 당선작이 없어 아쉬워했던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작이라는 후문이다.
폐막식을 진행한 축제극장은 설렘과 뜨거움으로 가득 찼다. 수상팀 및 수상자들의 들뜬 마음과 벅찬 감동이 객석까지 전해졌다.
그와 더불어 폐막을 빛내준 식전 공연으로 러시아 무용단의 댄스와 세계적인 비보이팀인 라스트포원의 비보잉 갈라쇼가 펼쳐져 무거운 폐막식의 공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홍기 거창군수, 신성범 국회의원을 비롯해 800여명이 참석해 17일간의 길고도 짧았던 축제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함께 축하하고 독려해 주었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올해로 25회를 맞아 더 풍성한 볼거리와 체험행사를 제공했다.
이종일 축제감독은 “지금껏 지방에서 국제연극제로서의 터전을 마련해 왔다면 다음 해부터는 전문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때”라고 밝혔다.
한편, 거창국제연극제는 여름철 국내 최고의 야외 공연축제로 문화피서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내며, 지방에서도 서울을 능가하는 축제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25회 거창국제연극제 세계초연희곡 공모/경연 참가작
심사총평
거창국제연극제의 금년 화두는 “연극이 없다는 건 인생이 없다는 것”이다.
이 화두에 걸맞게 지나치기만 해도 한 여름밤의 꿈과 추억을 부풀릴 수 있는 이 연극마을의 축제는 다른 연극제와 크게 다른 특징을 지닌다.
그것은 그 때 그 때 일회성의 아름다운 축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네 연극의 미래를 위해 끈기 있게 높은 돌탑을 쌓아가고 있음이다.
매년 기성과 신인작가를 망라한 초연희곡을 공모하여 좋은 작품들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경연을 통해 연출과 배우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가늠하고 증폭시키는 열띤 마당을 마련하고 있어 거창연극제는 우리 연극계의 풍요한 미래를 위한 알찬 투자를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극인의 입장으로는 초연희곡 공모와 경연의 두 프로젝트는 거창국제연극제의 실질적인 축으로 보여진다.
1. 2013 세계초연희곡 공모
지난 해에 당선작이 나오지 않았기에 조금은 긴장하면서 심사에 임했다. 언제나 당선작이 솟기를 바라는 마음 한결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번째 토론과정에서 되도록 많은 수의 작품들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안세진의 <꼬레아 드림>과 <삽질>, 윤희경의 <통나무들>, 그리고 양수근의 <오월의 석류> 네 편이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꼬레아 드림>: 코리언 드림을 꿈꾸던 베트남 청년이 일종의 사기극에 휘말려 한국의 바보 처녀와 결혼하게 되자 뜻밖의 복수의 결말을 야기하는 다문화 결혼의 어두운 뒤안길을 그린 작품이다. 시의성 강한 다문화 가정 문제를 뒤집어 놓고 본 시선이 새롭고 특히 복수의 일환으로 한 마을을 온통 베트남 사람들의 마을로 전화시키는 결말은 상당한 경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극적 구성이 약하고 단조로우며, 바보처녀의 어눌함의 과도한 반복은 극진행을 저해하고 있다. 특히 주인공의 심리적 요인이나 그 형상이 뚜렷하게 극화되있지 않아 아쉽다.
<삽질>: 등단은 했지만 오래도록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등단의 영광에 묻혀 좌절감을 씹고 살아가는 젊은 작가의 괴기한 삶을 짚어보고 있다. 구성이 탄탄하고 대사를 운용하는 감각도 뛰어나다. 제 몸을 후벼파는 일 밖에는 만사가 불가한 듯 방바닥에 삽질을 계속하고 그 구멍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소설가와 사회현실의 벽에 부딫혀 피곤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그 아내, 이 두 사람의 절망적인 그림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창작하는 사람의 절망은 흔한 소재이기도 하거니와 삽질의 은유가 드라마적 성찰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이 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소설가의 끝이 너무 사적이어서 극적인 감동의 폭이 상당히 좁아져 있음을 느낀다.
<통나무들>: 일제 만행의 대표적 기구인 하얼빈의 731 부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살해되는 조선인들의 참혹성을 다루고 있다. 강렬한 주제의식이 돋보이고, 잘 다루어지지 않은 소재여서 우선 기대치가 높은 작품이다. 그러나 다 읽고난 후의 느낌은 주제의식이 드라마로 잘 이어져 있지 않아 역량이 상당한 듯 보이는 작가의 의도를 가늠하기 쉽지 않아 미완성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더구나 딱히 731부대의 특정상황이 심도 있게 묘사되지 않은 채 단순한 구성에 후반부의 흐릿한 전개가 그러한 생각을 더하게 한다. 나이토의 인물처리와 공연성도 문제다.
<오월의 석류>: 5.18민주혁명의 그림자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 있음을 한 가족의 아픈 상처를 통해서 조용히 그러나 감동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눈물이 절로 솟는, 공연이 기대되는 그러한 작품이다. 가족극 형식으로 5.18 시국을 논평한다든가, 설교조의 말 하나 없이 가족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시종 정치사회적 고통의 깊이가 뚜렷하게 느껴지며 5.18을 오히려 생동감 있게 재현한다. 죽은 엄마와 어린 시절의 아들을 엮어내는 구성의 밀도가 진하고, 세 남매의 인물변별력도 확연하여 상처를 안고 숨죽여 이어온 그들의 삶의 무게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익은 석류알처럼 빨강이다. 상당한 수작이어서 흠을 잡기가 싫지만 사진을 찍는 마지막 부분은 기시감을 주는 안이한 처리가 아난가 하는 아쉬움만을을 말해 둔다.
금년엔 당선작이 올랐다. 그 당선작은 양수근의 <오월의 석류>이다. 초연희곡 공모에 응한 모든이들을 위해 오는 해를 기대한다.
2. 경연참가작
전체적으로 작년에 비해 수준이 높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예술적 차원의 수준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음이 사실이다. 예심을 거쳐 경연에 참여한 단체는 열 다섯으로, 모두들 숨가쁜 열정으로 본선에 임했음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도 즐거운 여름이다.
심사위원들의 즐거운 토론은 다음의 여러 단체상 후보를 결과했다: <하이옌>, <소라별 이야기>, <춘향요>, <동치미>, <헬로!>,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소>, <해피! 오 해피!>, <욕>.
우선하여 폭 넓게 검토하고저 한 것이다. 즐거운 토론이 열띤 토론으로 바뀌면서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소>와 <하이옌> 두 작품이 대상후보로 올랐고,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하이옌>이 대상,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소>가 금상으로 결정되면서, 은상에는 <해피! 오 해피!>가 올랐다.
단체대상 <하이옌>: 다문화 가정의 뒤안길에 얽힌 웃지못할 사연을 재치 있게 풀어나간다. 대본도 그 시선이 독특하고 반전 또한 흥미롭다. 연출은 일견 무성의한 듯한 미니멀한 장치를 배경으로 무대공간을 다채롭게 그러나 깔끔하게 활용하면서 자주 재미나는 시퀀스를 창출하는 기량을 보인다. 템포감도 있고 창의성이 엿보이는 공연이었지만 연출이 좀 더 사고의 폭을 넓혔더라면 잦은 암전을 피할 수도 있었겠고, 작품에 임하는 사유의 깊이도 반영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체금상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소>: 대본이 미완인 듯 읽히지만 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다가온다. 연출의 끈질김과 주인공의 끈질김이 더해져 흡인력이 강한 공연을 결과했다. 템포감각이 좀 더 날카로웠더라면 전반부의 알 듯 모를듯한 지루함을 덜었을텐데 하는 이쉬움이 있다.
단체은상 <해피! 오 해피!>: 연륜이 일천한 이들에게는 소화하기 쉽지 않은 작품을 근성 있게 끌고 나아가는 점이 돋보인다. 연기자들도 열연하는 앙상블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연출의 시종 무거운 접근은 발상전환의 연습을 요구한다.
개인상 희곡상: <당신은 어느별에서 왔소>
개인상 연출상: <하이옌>
개인상 연기대상(남): 배우진 (당신은 어느 별에서 왔소—철구 역)
개인상 연기대상(여): 장은주 (미용명가—김미아 역)
여기 연기대상 경쟁에 <하이옌>의 오반장 역과 영천 역, 그리고 <해피! 오 해피!>의 부인 역이 끝까지 팽팽했음을 알린다.
연극체험이야말로 살인적인 더위를 쫓는 최상의 길인 것을 이번 여름 거창에서 새삼 느끼면서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마음 속으로 다음 날들을 기약해본다. 안녕!
심사위원장 정일성
거창인터넷뉴스원(gcinews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