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도산서원(道山書院) 복원추진 실무위원회(위원장 정흥식)는 2월 20일 거창읍 한우팰리스 2층 소연회장에서 김정판 거창향교 전교을 비롯한 20여 명의 지역 사회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참석자 소개, 위원장 인사말, 김영석 홍보 실무위원의 거창 도산서원 복원 취지와 경과보고에 이어, 강민구 경북대학교 교수의 도산서원 복원의 필요성 설명과 기타 토의 순으로 진행됐다. 

우리 거창은 예로부터 빼어난 산수(山水)를 자랑하는 고장이자 학문과 교육의 전통이 깊은 곳이다. 

오늘날 거창이 「교육의 도시」로 자리잡은 것은 선현(先賢)들의 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래전 모계 선생이 서원 창건(山際洞立院創規)을 시도하고, 향교의 교임(校任)이었던 김익견 공(公)이 1656년 「도산서원 건립을 하자」고 주창(主唱)하여, 고을 사람들이 적극 찬성하고 각자의 형편에 따라 성심성의껏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또, 팔송 선생이 1656년 거창 수령에게 「도산서원의 건립을 위해 도와 달라」는 서신(書信)을 보내는 한편, 1659년 사액 요청을 하는 상소문을 지어 1660년 봄에 유생 3명이 상소문을 들고 궁궐에 가서 읍소했다.

이러한 우여 격절(隔絶)을 거쳐 1660년에 묘우를 짓기 시작해 그다음 해 12월 한훤당과 일두 선생을 봉안하고, 동계 선생을 배향하는데, 그 후 1662년 2월 현종 임금으로부터 편액을 받아 1664년에 강단을 완공했다. 

이 과정에서 송천 및 종모당, 문백 선생 등 제현(諸賢)들의 노고가 많았음을 문적(文籍)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다 1869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우리 고장은 2년을 더 버티다 210여 년 동안 거창 교육의 중심인 도산서원이 1871년 강제 훼철 당하고 바로 서원 터 주변에 비석을 남겨둘 정도로 많은 애착을 보였다는 점이다.

도산서원이 훼철된 후 1898년 거창 유림은 향사(享祀)할 곳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한훤당 김굉필과 일두 정여창의 얼을 계승하고자 600여 문중 1,000여 명의 성원으로 모현정(慕賢亭)을 창건했다. 

서원 훼철 후 서원 복원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었다. 

1994년 오환숙 교장과 김시연 선생이 거창신문사와 함께 복원을 시도하였고, 2009년 동물병원장 김영석 씨, 2018년 도산 이장 최재윤 씨가 복원을 건의하였으나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2022년에는 거창문화원과 동방한문학회가 도산서원 복원 관련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서원의 가치와 복원 필요성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됐다.

이날 정흥식 실무위원장께서 이번에는 거창향교와 유도회, 거창 24문중과 용산범국회, 연참계 등의 유림계(儒林契)뿐만 아니라 고장에 연고를 둔 문중과 사회단체들이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떠나 「거창 도산서원 복원 여망」이라는 목표 아래 통일된 행동을 하자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교육도시 거창」의 뿌리를 되찾는데 뜻을 같이하자고 강조했다. 

이 위원회는 향후 3월말까지 군민과 향우를 대상으로 도산서원 복원 여망 서명을 받아 관계 기관에 전달하고, 재단법인을 설립, 서원 운영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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