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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투고 기사입력 : 2013/06/03
(기고문)거창근현대사, 현장을 찾아서 (2)
경남 하동군 의신마을에 일병과 싸우다 전사한 거창의병 무덤 있어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 뒷산에는 거창의병들의 무덤이 있다. 1908년 2월 2일 일본군경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들의 시신을 마을주민들이 수습해 마을 안 산기슭에 매장하였다. 현재 의병 무덤 임을 알리는 작은 안내판이 설치되어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1908년 1월 말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에 의병 50여 명이 음력설을 지내려고 내려왔다가 1908년 2월 2일 토벌에 나선 함양수비대의 지리산 토벌군과 전투를 벌였다.

 

 

여기에 참여한 의병은 거창 의병으로 1907년 일제 당국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한 대한제국 지방진위대의 해산병 일부가 참여한 의병이었다.

 

 

일본군 토벌대는 군경합동토벌작전으로 의신마을 의병을 공격하였다. 1908년 2월 1일 부터 다음날까지 거창경찰분서 함양출장처 가와하라[川原] 특무조장 이하 15명의 일본군 토벌대가 파견되어 의신마을 의병과 전투를 벌였다.

 

 

2월 2일 의신마을에서는 의병과 일본군 사이의 전투로 인해 15~20여 명이 사망하였고, 1명이 포로로 잡혔다.

 

 

또 같은 달 3일부터 5일까지 전라도 남원·구례 수비대의 일본군과 순천주재소 순사 등의 합동 토벌대 50여 명이, 같은 달 7일 부터 11일에는 경상도 진주·하동 수비대의 일본군과 순사 등이 3개 부대로 편성되어 의신마을을 중심으로 하동군 일대에서 의병토벌작전을 벌였다.

 

 

1907년 덕유산과 거창을 포함한 서북경남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김동신 부대는 1908년 1월부터 섬진강과 지리산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일본군경과 전투를 벌였고 1908년 거창 고제 매학동 전투이후 김동신이 체포된 후에도 그의 부장들은 부대를 이끌고 지리산을 무대로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 뒷산에 잠들어 있는 거창의병들의 무덤은 이 시기 하동에서 전투를 하다가 전사한 김동신 의병부대원들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동 화개면 의신마을은 일제에 맞서 조국 광복을 위해 고향인 거창을 떠나 머나먼 지리산 하동 섬진강가 기슭에 묻힌 거창의병들의 한이 서린 공간이다.

 

 

                            조 재 원(역사 칼럼니스트)

 

※ 참고문헌

 

1.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3-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2. 홍순권,『 한말 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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