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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투고 기사입력 : 2013/03/26
(기고문)러시아를 다녀와서
민주평통 15기 자문위원 우영혜

제15기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거창군협의회에서는 최근 우리 역사가 살아 숨쉬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를 다녀왔다.

 

러시아는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국가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소련과 거의 교류가 없었으나, 러시아 연방이 되면서 극동지역은 2011년부터 최대교역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전자제품, 의류 등 공산품을 수출하고, 극동에서는 석유, 천연가스, 수산물 등 원자재를 주로 수입한다.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시간은 인천에서 2시간 정도밖에 안 걸렸다. 블라디보스톡은 연해주 지방의 중심도시이자 항구도시로서 인천, 부산, 동해와 직항로가 개설되어 러시아를 짧은 시간에 갈 수 있었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블라디보스톡 시내 모습)

 

우리 일행은 먼저 블라디보스톡의 독수리전망대와 신한촌 기념비를 둘러보았다. 19세기말 연해주에 한인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신한촌이 형성되었고 연해주지역 항일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지금은 거주하는 한인은 없고 신한촌 기념비만 세워져 있었다.

 

신한촌 기념비 앞에서 헌화와 묵념을 올렸는데 기념비에서 마음을 붙잡은 것은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다.’라는 글귀였다. 이역만리 나라 잃은 설움과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고생했을 그분들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독립된 국가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날은 우리 일행을 위한 특별한 행사가 있었는데, 블라디보스톡 이양구총영사의 ‘북핵문제와 대응방안’이라는 주제로 초청 간담회가 있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국내외 인식과 여론이 좋지 않으며, 한반도 통일은 국제사회에서 공감대가 조성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국운상승기를 맞아 좋은 쪽으로 변화가 올 것이라고 하였다.

 

강의에 이어 남북한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개국 속의 우리나라 외교전략 등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북한은 양치기 소년처럼 국제사회에서도 신뢰를 잃어가고 있으므로, 우리는 의연하면서도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우리가 단합해서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다지면서 밖으로는 외교를 활발히 하여 평화통일이 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다음날은 독립운동의 근거지이자 발해유적지가 있는 우수리스크로 이동하였다. 큰 영토를 자랑하듯 2시간을 달려도 끝없이 펼쳐지는 광야에는 자작나무와 참나무가 도로가에 빽빽하게 있었으며, 해변에는 바닷물이 꽁꽁얼어 얼음위에 차가 서 있거나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우수리스크에서는 이상설 선생 유허지, 발해산성 유적지, 최재형 선생 생가, 고려인문화센터, 거북이 공원 등을 둘러보았다.

 

                                   (이상설 선생 유허지)

이상설 선생 유허지는 수이푼강 주변에 있었는데, 이상설 선생은 1907년 고종의 밀서를 받고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이준, 이위종을 대동하고 사행하여 한국 독립운동을 주장 하고, 이어 연해주에서 조국 독립운동에 헌신 중 순국하게 되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수이푼 강가에 유해를 뿌렸으며, 2001년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 광복회와 고려학술 연구회에서 비를 세웠다.

 

 

넓은 평원으로 펼쳐진 발해 산성터에서는 지구가 둥근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멀리 보이는 구릉이 둥그스름하게 보였으며, 끝없이 펼쳐지는 들판에서 대조영이 말을 타고 군사들과 함께 달려오는 듯한 영상이 스쳤다. 이 넓은 발해산성 터에서 지금은 그 유적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대조영의 우렁찬 기개가 느껴졌다.

 

 

                                            (발해성터)

일행은 최재형 생가에 도착했다. 최재형 선생은 한인사회의 지도자로서 독립운동과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0년 4월 일본군에 의해 불법 체포되어 학살당했다. 최재형 생가에서 선생의 애국심과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려인문화센터는 이주 역사관, 교육문화센터, 한국문화체험관, 다목적 공연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와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 문화센터는 해외 한인거주 중심지에 세워져 있었으며, 고려인 2, 3세 들이 공연장에서 춤 연습 하는 모습을 보니 생동감 있는 한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저녁에는 이양구총영사 내외와 같이 블라디보스톡 해변 공원을 둘러보았다. 얼음이 두껍게 얼어붙은 바다위에 아름답게 물든 노을 속에서 여행객, 지역민들과 어울려 사진도 찍고, 산책을 하며, 총영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양구총영사님은 함양 서상이 고향이며, 어릴 때 거창 외삼촌댁을 자주 왔던 터라 우리 일행이 고향사람으로 느껴져 많이 기다렸다고 하였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총영사관에서 차를 내 주시며,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람처럼 친절하게 맞아주고, 함께 보낸 시간을 우리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얼음이 얼어 있는 블라디보스톡 해변의 노을)

루스키 섬은 블라디보스톡에서 30분정도 차를 타고 갔다. 이 섬은 소련의 군사기지가 있었으며 1990년 중반까지 출입이 제한되었으나, 아름다운 연육교를 만들어 2012년 APEC 정상회의를 가졌던 곳이다. 현재는 블라디보스톡의 대학을 몇 개 통합하여 극동연방대학교의 강의실과 기숙사 등으로 활용하고 있었으며, 내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셋째날 저녁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시베라아 횡단열차를 탔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1916년 완공되었으며,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약 9,400㎞, 기차로 6박7일 걸린다. 지구둘레의 4분의 1에 가까운 거리로 중요한 역만 59개나 된다. 열차는 침대칸으로 2인실, 4인실, 6인실 등으로 나뉘며 객실마다 탁자가 놓여있어서 이야기를 하며 차를 마실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한 기차는 순백의 대설원을 배경으로 자작나무 숲, 아담한 정착촌, 산림과 광야 등을 번갈아 가며 지나가는데, 어둠속에 사라지는 차창 밖의 경치는 기차가 철거덕거리는 소리 속으로 묻히고, 11시간을 달려 동이 트자 하바롭스크역에 내렸다.

 

                               (레닌광장에서 )

하바롭스크에서는 예술회관, 레닌광장, 2차대전 기념비, 아무르강변 전망대, 러시아정교회 등을 둘러보았다. 이곳에서는 북유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광활한 영토와 풍부한 천연자원, 영하 40도가 넘는 추위, 알콜 40%의 보드카, 안톤 체호프, 푸쉬킨,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와 같은 거장이 탄생한곳, 46개의 주로 이루어진 나라!

 

 

역사적으로 고구려, 발해 등 북방의 역사에서 항일 독립투쟁, 재외동포의 이주사, 우리 민족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롭스크, 러시아의 한 모퉁이를 짧은 순간 스쳐왔지만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잊지 않은 한인들, 다민족 국가에서 대립과 갈등을 넘어 평화로 나아가는 민족관을 배울 수 있었다.

 

 

극동지역은 유럽과 아시아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이 길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는 비전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통일이 된다면 지름길이 될텐데,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며 글을 마친다.

 

                                              

                         거창인터넷뉴스원(gcinew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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