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회원가입
기사
검색
2024-4-29(월) 전체기사  | 사회 | 정치·의회 | 경제 | 교육 | 문화예술 | 레저스포츠 | 자치행정 | 건강·생활 | 사람들 | 동영상·포토뉴스 | 칼럼 | 투고 |
로그인
로그인  |  회원가입
발행인 인사말
뉴스 카테고리
인물·동정
알림방
광고
고시·공고
쉼터
타로카드
띠별운세
오늘의일진
꿈해몽
무료운세
생활 검색
거창날씨
네이버지도검색
신주소검색
사이트 링크
거창군청
거창경찰서
거창교육청
거창세무서
거창우체국
    
뉴스 > 투고 기사입력 : 2015/05/15
(기고문)거창군민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 '거열성', 국가사적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조익현(거창대성중 교사)

조선 중종 때 간행된『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건흥산은 “군 북쪽 8리에 있으며 진산이다<乾興山在北八里鎭山>”라고 기록되어 있다.


건흥산은 예부터 거창 고을을 지키는 주산으로 고을의 번영과 평화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던 곳이었다.


이곳 정상 주변에는 3리에 걸쳐 오래된 성이 축조<在邑八里石築三里>되어있는데 거창 사람들은 이를 거열산성이라 부른다.


이 산성은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기념물 제 22호 ‘거열성’으로 지정되었고, 1983년 11월 23일에는 거열산성군립공원으로 추가 지정되면서 체계적인 관리 및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관심 및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면서 거열성은 7만 거창군민과 전국의 등산객들이 밤 낮 가릴 것 없이 즐겨 찾는 거창군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이자 건강단련의 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


거열성을 찾는 이들이 무심하게 산을 오르내리고 있지만 이곳에는 가슴 아픈 역사가 서려있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몹시 낀 날 이곳을 찾으면 1,352년 전인 663년의 백제부흥운동군과 신라군의 처절했던 아우성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거열성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문헌기록인『삼국사기』신라본기 문무왕 3년(663)조의 기록에 의하면 “봄 2월에 흠순과 천존이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의 거열성을 공취하여 7백여 급을 참수하였다<三年春二月欽純天存領兵攻取百濟居列城斬首七百餘級>”고한다.


백제는 660년 7월 13일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 도성이 함락 당했고, 19일에는 웅진성으로 탈출했던 의자왕이 항복하였다.


그러나 조국을 되찾기 위한 백제부흥운동이 8월부터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한편 의자왕 2년(642) 이후로 거창은 백제 영역에 속해 있었다. 따라서 거열성은 백제부흥운동의 전초 기지가 되었다.


기세를 떨치던 백제부흥운동은 663년에 접어들면서 세력이 표 나게 약화되어 갔다.


신라군은 지금의 경상남도 서부 방면으로 대규모 공세를 시도했다. 그 해 2월에 접어들면서 거열성(거창)과 거물성(남원), 그리고 사평성(구례)이 차례로 함락되었다는 역사 기록이 있다.

 


협곡을 지키는 거열성


거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건흥산(乾興山 ; 572m) 정상에는 앞뒤로 말안장과 같이 두 봉우리가 솟아 있다.


이 두 봉우리 사이로 작은 계곡이 좌우로 이어지는데 거열성은 이 정상부를 둘러싼 형태로 만들어진 퇴뫼식 산성이다.


성의 정상부에 해당하는 북문지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거창 주위가 한 눈에 들어온다.


거열성에는 2008년 발굴조사 결과에 의하면, 산성 내 서쪽 계곡에 대규모의 집수 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산성에서 수원의 확보는 평상시 거주와 전쟁 시 지구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한편 거열성 약수터의 물은 거열성 동쪽의 수원에다 파이프를 묻어 산 아래로 내려오게 한 것으로, 이처럼 풍부한 수원은 거열성을 천혜의 요지로 만들어주고 있다.


건흥산의 남쪽에는 우리가 보통 망실봉이라고 부르는 망덕산(望德山)이 있고, 그 사이에는 마리천과 위천천이 합류한 영천(瀯川)이 흘러 협곡을 이루고 있다.


이 협곡은 마리소분지와 거창분지로 통하는 도로 중 고개를 넘지 않고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현재에도 이 협곡에는 국도 3호선과 24호선이 개설되어 있다.


남쪽 맞은편에 있는 망덕 산에도 망덕산성과 운정산성이 축조되어 전체적으로 협곡을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이 협곡을 지키는 중요한 산성이 거열성인 것이다.


신라군이 백제로 향할 때 꼭 거쳐야 할 곳이 이 협곡이다. 따라서 거열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이 협곡을 무사히 통과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처절했던 거열성 전투

 

663년에 접어들면서 부흥운동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지도부의 세 거두 즉 복신과 도침 그리고 풍왕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다.


신라군은 이 기회를 노려 백제 부흥군에 대한 대규모의 공세를 시도했다.


거열성은 사비도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기필코 차지해야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거열성을 공략한 신라의 장수는 흠순과 천존이었다.
흠순은 김유신의 동생으로 황산벌 전투에 출정한 경험이 있는 맹장이었다.


음력 2월은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산정엔 겨울 동안 쌓인 눈이 녹지 않은 쌀쌀한 날씨였을 것이다.


성을 지키는 부흥군과 주민들은 신라군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였다.


거열성 발굴 과정에서 가공된 둥근 돌멩이(석환)가 많이 나왔다. 성을 지키는 사람들이 외적의 침입을 격퇴하기 위해서 마련한 돌이었다.


신라군의 총공격이 시작되자 부흥군과 주민들은 거열성 곳곳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거열성 복원 공사가 마무리된 후 거창대성중학교 학생들이 거열성 싸움을 재현한 적이 있었다.


신라군과 백제부흥군으로 나누어 성의 서쪽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8미터 높이의 성곽을 넘나들기란 쉽지 않았다.


신라군은 대병력과 우수한 무기로 성을 공격하였다.
신라군이 성을 공격했던 코스는 지금 우리가 다니는 등산로였을 것이다.
왜냐면 길은 항상 사람이 다니기 쉬운 쪽으로 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신라군이 결국 성을 함락시켰다.
성이 함락된 후 무려 7백여 명이 참수되는 참극이 일어났다.


이른 봄 거열성 산골짜기에는 처절한 비명소리가 하늘을 뒤덮었을 것이다.


성이 함락 당하자 부흥군 일부는 북문(건흥산 정상에 위치)을 통해서 취우령으로 후퇴하여 덕유산을 타고 육십령을 넘었을 것이다.


백제부흥군의 요새였던 남원의 거물성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뒤 따라온 신라군은 거물성과 사평성(구례)을 차례로 함락시켰다.


또 덕안성이 함락되면서 1천 70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백제 부흥 운동은 서서히 막을 내렸다.

 

 

국가사적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위와 같이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거열성은 거창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지금도 그 중요성과 의미는 현재진행형이다.
거창읍에 위치하여 접근성이 좋아 시간을 가리지 않고 거열성을 오르내린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역사공간이다.


이처럼 거열성과 건흥산은 거창군민의 생활 속에 일부가 되어, 1,3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거창의 중심으로 그 기능을 잃지 않고 있다.


특히, 거열성을 사랑하는 거열산악회가 운영되어 자발적인 봉사로 주목을 식재 관리하고, 매년 1월 첫째 주 일요일엔 거열산악회 전 회원의 무사안녕을 비는 제가 거열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거열산악회(회장 백기철 외 80명)가 중심이 되어 거열성에서 시산제를 지내기 위해 삼원석재 사장이 기증한 화강석으로 만든 제단을 헬기로 운송하여 제단을 설치할 정도로 그 관심과 열의가 큼을 알 수 있다.


또, 거창군 통합체육회 주관(회장 최정환)으로 1,200여명의 산악회원이 거열성의 등정코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과 그 중요성에 비해 경상남도 기념물로 관리되고 있어 한편으로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것도 사실이다.


근래 거창군과 당국에서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지정 사적으로 승격시키고자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하고 있어 다행한 일이며, 이번에 국가사적 지정 승격의 결실을 맺기를 바랄뿐이다.

 

 

 

                 거창인터넷뉴스원(gcinews1@hanmail.net)


   
 
 

 

(명칭)인터넷신문/(등록번호)경남 아00210/(등록연월일)2013. 1. 17/
(제호)거창인터넷뉴스원 / (발행.편집인)우영흠/(전화)055-945-5110/
(발행소)경남 거창군 거창읍 상동1길 45 상가1층 / (발행연월일)2013. 1. 24
(청소년보호책임자) 우영흠/E-mail : gcinews1@hanmail.net
copyright ⓒ 2013 거창인터넷뉴스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