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소장 ‘건칠희랑대사좌상(乾漆希朗大師坐像)’ 국보 제333호 지정 | ||||
희랑대사는 거창 주상면 희동마을 출신, 고려 왕건 도와 王師돼 | ||||
1,000여년 전 우리나라 유일한 승려 실물 그대로의 조각으로, 합천해인사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999호 '건칠희랑대사좌상’이 10월 21일 문화재청의 심의를 통해 국보 제333호로 승격 지정됐다고 밝혔다.
긴 얼굴에 넓은 미간, 오똑한 코, 뾰족한 턱, 큰 귀, 툭 튀어나온 울대뼈와 쇄골, 깊은 눈매, 이마와 눈가의 세 가닥 깊은 주름이 연륜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얇은 입술에 옅은 미소가 번져 너무나 사실적인 인자한 노스님 인상이다.
얼굴과 가슴, 손, 무릎 등 앞면은 건칠 기법(나무를 뼈대로 삼지 않고 모시나 삼베와 같은 헝겊을 여러 겹 바르고 옻칠을 거듭해서 형태를 만드는 기법)으로 구성했고, 등과 바닥은 나무를 조합해 만들었다.
특히, 천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가사와 장삼에 쓰인 화려하고 과감한 색채나 피부에 쓰인 색의 변형이 거의 없이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는 주상면 성기리 희동마을에서 태어나 15세때 합천 해인사로 출가해 해인사 제3대 조사(祖師)를 지냈으며, 고려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데 기여했고, 그 공으로 왕건의 스승이 됐다는 점이다.
주상면 성기리의 '성기'와 '희동(희터)'마을은 모두 희랑대사와 연관된 이름들이다.
'희랑대사'란 명칭은 대사가 해인사 내 말사 희랑대(암자)에서 오래도록 정진수도한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희랑대(위 사진)는 현재도 건재하고 있다.
희랑대사가 역사적인 인물로 부각되는 것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큰 도움을 줘 왕건의 스승이 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희랑대사 도움으로 후백제군을 물리친 왕건은 희랑대사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해인사에 전답 500결을 시납하고 해인사를 중수하며, 국가의 중요 문서를 이곳에 두었다고 기록돼 있다.
후세의 분석으로는 희랑대사가 보냈다는 용적대군은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 해인사 소속의 승군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거창인터넷뉴스원(gcinews1@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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